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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계인형의 편지> 제작기

    2023년 메이커페어 서울에 출품한 작품 <기계인형의 편지> 제작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 봅니다.

    1.
    2023년 7월 초, 메이커페어 공지가 뜬걸 보고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새 작품에 도전하는데 페어가 적절한 마감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제 실력으로 만들 수 있는 가장 앞선 작품이 뭘까요? 2021년에 만들었던 드로잉머신의 다음 버전을 구현 해 보자고 마음 먹었습니다.

    2년 전에 만든 자화상 그리는 드로잉 머신은 평면상에서 구동되는 작품이었습니다. 즉 x-y평면에 캠이 배치되고, x-y평면에 그림이 그려지는 구조였지요. 
    이번에 도전할 프로젝트는 y-z평면에 캠이 배치되고, x-y평면에 그림이 그려집니다. 캠 메커니즘에서 발생하는 높낮이의 차이가 캠-캠팔로워-링키지-어깨-팔꿈치-손 까지 전달 되어서 식별 가능한 '그림'의 형태로 구현 되는 것이 가능할까? 가능합니다. 가능하다는걸 1800년대에 선배들이 이미 증명했습니다. 관건은 제가 구현할 수 있느냐는 거겠지요. 꽤 어려운 도전인데, 성공시키고 나면 기계인형 제작자로서 배우는게 많을 것 같았습니다.

    불안과 기대의 마음을 안고 시제작에 착수합니다. 3일 동안 애 쓴 끝에 펜을 전후, 좌우, 상하로 움직이는 관절구조 제작에 성공합니다.



    몹시 어설펐지만 가능성의 싹이 보였습니다. 메이커페어까지 3개월 정도의 시간이 있으니 그 안에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메이커페어 참가 신청서를 제출했습니다.

    2.
    이번 작품은 분해했을 때 캐리어 가방에 들어가는 크기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러려면 캠의 지름이 300mm 이하 여야했습니다. 캠을 작게 만들면 캠의 오차나 동력 전달부의 덜컹임이 펜을 쥔 로봇 팔의 끝에 가서는 크게 확대되어 결과물에 표현되는 난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관절 구조를 여러 번 바꿨습니다. 캠의 작은 변화가 민감하게 손 끝까지 전달되면서, 동시에 각 동력 전달부에 덜컹임이나 결함을 줄일 수 있는 설계가 무엇인지 찾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관절 구조 제작에 가장 많이 참고를 한건 Henri Maillardet 작가가 1800년대에 만든 작품 <Draughtsman-Writer> 입니다. 글씨를 쓰는 소년 형태의 작품인데, 이 작품에 대한 유튜브 영상 자료들이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3.
    처음에는 강아지 그림을 테스트케이스로 삼았는데 결과물이 강아지와는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그래서 보다 단순한 그림, 별 모양으로 테스트케이스를 바꿨습니다. 그런데도 뭔가 이상했습니다. 


    설계를 처음부터 찬찬히 다시 점검해보니 x좌표의 경우 캠의 증가 방향과 x좌표의 증가 방향이 서로 반대였습니다. 
    즉, 캠의 반지름이 커질 때 x좌표 값이 증가하는게 아니라 감소했습니다. 캠 설계 단계에서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바보같은 실수를 한 것입니다.

    캠 설계를 다시 해서 장착한 뒤에 구동해보니 어설픈 별이 눈 앞에 그려졌습니다.

    아, 되는구나. 

    처음으로 입체 구조의 드로잉 머신을 구현한 순간이었습니다.




    4.
    메이커페어 때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 '캠 설계를 어떻게 하셨냐' 하는 물음이었습니다.

    (1)그림을 그린 뒤 100조각으로 쪼갠 다음
    (2)조각 각각의 x, y 좌표를 구하고
    (3)좌표들을 모아 시간에 따른 거리 그래프를 그린 다음
    (4)그래프를 좌우로 쭉 늘린 다음 원 둘레에 붙이면 그게 캠이 됩니다.

    라고 설명 드렸습니다.

    그러나 위의 과정을 남이 따라할 수 있을 정도로 자세하게 설명하라면 몇 시간은 걸릴 겁니다.

    저는 직접 만든 소프트웨어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2년 전에 드로잉 머신을 만들 때 개발 해 놓은 소프트웨어들, 즉

    (2)100여개의 x, y 좌표를 한꺼번에 수집해서 정리해 주는 getNumberPosition프로그램
    (3)좌표값으로 그래프를 그려주는 dotToGraph 프로그램
    (4)시간-거리 그래프를 캠으로 변환 해 주는 camDesigner 프로그램을 활용했습니다. 

    해당 프로그램의 상세한 내용은 제가 영상으로 정리한 바가 있으니 관련 내용을 참고하면 되겠습니다. 

     

    특히 설계 과정의 핵심이되는 camDesigner 프로그램은 일러스트레이터 사용자라면 누구나 쓸 수 있도록 무료로 배포하고 있으니 아래 링크를 참고 바랍니다.
    https://bongseo.com/121

    5.
    200년 동안 봉인되어있던 기계인형이 인간들에게 편지를 쓴다는게 이 작품의 이야기입니다. 기계인형이 사람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면 좋을까요? 오노 요코 처럼 'yes'라는 메시지를 건낼까? 피에르 자케 드로의 오토마타 작품 처럼 제작자의 이름을 쓸까? 여러 고민들을 했는데, 꽃으로 정했습니다.
    꽃은 형태가 덜 복잡하고 한붓그리기로 표현하기가 좋아서 비교적 구현 난이도가 낮았고, 기계인형이 꽃을 건낸다는게 낭만적인 느낌이 들어서 꽃으로 정했습니다.

    메이커페어 때 꽃 그림 선물을 받고 기뻐하던 시민들 표정을 보며 잘 한 결정이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6.
    칠을 하거나 옷을 입히는 등 디자인적인 개선의 여지가 남는 작품입니다. 다음 버전을 만들 기회가 있다면 관련 부분을 개선 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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