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처음 인형극을 만들어 무대에 서 본 경험을 기록으로 남긴다.
어쩌면 콘텐츠진흥원 창의인재동반사업이나 인형극에 관심 있는 청년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지원, 서류, 면접
현업에서 인형극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전문가분들과 멘토-멘티로 짝 지어서 인형극의 여러 요소를 배우고, 마지막에 창작 인형극을 무대에 올려 공연하는 게 사업의 골자다. 월 140만 원가량의 지원금이 6~7개월간 지급되는데, 사업 동안 추가 소득이 있으면 안 되는 불편한 규칙이 있었다. 지원금이 청년 일자리 복지성 자금이라 무직자에게만 지급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이 사업에 선정 되면 반년 동안은 인형극 창작하느라 바쁠 테고, 또 다른 영리 활동을 하지 못할텐데 괜찮은가 자문 해 봤는데, 인형극을 배워서 40년 후에 마리오네트 인형을 잘 다루는 할아버지가 되어 있으면 꽤 괜찮은 인생이라 스스로 평가할 것 같아서 하기로 마음먹었다.
서류, 면접 평가를 거쳐서 참여가 확정되었다. 오토마타 작가로 수년 동안 활동해 왔고 인형 만들기에 자신 있다고 써서 제출했는데 뽑혔다.
면접장에 들어가니 면접관이 가로로 10명 넘게 학익진을 펴고 앉아 나 하나를 인터뷰하는 다대일 면접 형식이었다. 머릿속에 그린 면접의 형태가 아니어서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알고 보니 참여 멘토 전원과 극장 관계자분들이 면접관으로 참여한 것.
정말로 인형극에 대한 관심이 있는가? 진지하게 해 볼 생각이 있는가? 를 보는 것 같았다. 몇 년 전 목조각을 배우기 위해 마리오네트 인형 제작자분을 찾아가서 한 달 동안 배웠던 경험을 이야기했다. 여러 질문과 답이 오갔는데 벌써 반년 전의 일이라 기억이 흐릿하다. 머릿속에 남아있는 마지막 몇 문장을 옮겨본다.
○극장장 오정석 님 : 시각 예술가들은 혼자 일하는 경향이 있는데 공연예술은 부대끼면서 협업해야 하는 분야입니다. 가능하시겠어요?
■나 : (팀플 싫어하는 거 어떻게 알았지. 관상에 써 있나.. ) 작년에 예술인파견지원사업 가서 좋은 성과를 냈고, 올해에도 같이 하자고 연락이 왔는데 창의 인재 사업 지원하려고 거절했습니다.
○예술무대산 연출 조현산 님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 : 몇 년 전 춘천인형극장에서 인형극 아카데미 열렸을 때 지원해서 선정되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교육이 취소되어서 많이 아쉬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올해 만 서른셋이라서 창의 인재 사업 지원 기회가 거의 마지막이거든요 (다들 웃음) 꼭 뽑아주세요.
다음 날인가 합격 통보가 왔다. 춘천으로 가는 기차표를 다시 예매했다.
▲오리엔테이션
멘토, 멘티가 서로를 소개하고 앞으로 반년 동안 함께할 멘토-멘티 짝을 정하는 중요한 행사였다. 나는 마리오네트 인형 조종술을 수련해서 한국의 '알렉스 바티'가 되겠다고, 1인극 할 거라서 팀을 만들 생각은 없습니다. 라고 자기소개를 했다.
(알렉스 바티의 마리오네트 공연)
팀 만들 생각 없는데 멘티들이 나한테 헛 힘쓰는 건 낭비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얘기한 건데, 나중에 다수의 사람으로부터 이때의 자기소개가 인상적이었다는 평을 들었다. 모두가 서로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는데 ‘저는 혼자 하겠습니다’라고 하는 게 인상적이었다고. 순화해서 말한 거지, 사실 건방져 보였다는 뜻일 거다.
내가 배우고자 하는 멘토 1, 2, 3순위를 써서 냈다.
1순위. 인형극단 친구들 김성수 멘토님 : 마리오네트를 가르치는 유일한 멘토였다.
2순위. 극단 문 박영희 멘토님 : 즐거운 인형극을 표방한다고 하시기에.
3순위. 사다리 유홍영 멘토님 : 혼자 인형극으로 먹고사는 방법을 알려 준다고 하시기에.
멘토분들이 30분쯤 회의했고, 매칭 결과를 발표했다. 나는 종이 인형을 활용해서 한국 전통문화를 소재로 마당극 형태의 인형극을 하시는 극단 마루한 김지웅 멘토님과 매칭 되었다.
어?
내가 써서 낸 1, 2, 3순위 멘토가 아닌 다른 분과 매칭이 될 수도 있구나? 나는 그 순간 벙 쪄있었다.
그렇다. 한 명의 멘토가 맡을 수 있는 멘티 수는 2-3명으로 한정되어 있으니, 멘토 한 명에 여러 멘티가 몰리면 선택받지 못하는 멘티도 나올 수 있는 것이었다. 선택받지 못하면? 내가 원하지 않은 멘토와 매칭이 되어 6개월을 함께 하게 되는 거지.
사람들은 다 나보다 똑똑해서 오리엔테이션 1박 2일 과정에서 멘토님들과 대화를 하고, 어필하기도 하고, 아예 동료들과 팀을 짜서 구체적인 공연 계획을 갖고 사업에 지원한 사람들도 있는데 나는 1인극 하겠다고 소개했고, 마침 두통이 심해서 숙소에 먼저 들어가서 자버렸으니 될 턱이 있나.
나는 종이 인형에도, 한국 전통문화에도, 마당극에도 관심이 없는데 어쩌지? 혼란스러운 중에 마루한 김지웅 멘토님이 함께 멘티로 선정된 임범규님과 나를 불러서 멘토링 일자를 결정하고 헤어졌다.
인형극단친구들 김성수 멘토님이 다가오셔서 마리오네트 하고 싶어 한 거 아는데 함께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다만 김지웅 멘토님과 같은 군포에 극단 사무실이 있으니 김지웅 멘토님 멘토링 끝나면 저녁에 내 사무실에 오라고, 그러면 따로 멘토링 해 주겠다고 제안 주셨다.
그렇게 오리엔테이션은 끝나고 춘천에서 용산까지 ITX 열차를 탔다. 앞으로 반년 동안 김지웅 멘토님께 함께 배울 임범규님과 용산까지 가는 1시간 15분 동안 대화했다.
탭댄스를 오래 했고, 지금은 연극 연출가로 활동하고 있다고. 본인이 연출이니, 배우를 희망하는 팀원을 구하고 있었다. 같은 멘토로부터 배우니 둘이서 팀이 되면 미팅이나 연습 등 여러모로 편하다. 하지만 나는 한국의 알렉스 바티가 되어야 하는데... 팀 필요 없는데....
(그러나 한 달 뒤, 우리는 극단 문의 멘티 황성하 님과 함께 셋이서 팀을 이루어서 함께 공연을 준비하게 된다.)
객실에서 떠들 수가 없어서 열차 사이의 공간에 머물렀다. 서로에 대해, 무대에 대해, 공연에 대해, 이 사업에서 얻고자 하는 바에 대해 이야기했다. 탭댄스를 보여달라고 했다. 발소리가 커서 멀리 앉은 분들이 눈치를 줬다. 범규님이 만들고 싶어 하는 공연의 줄거리를 즉흥연기로 만들어 보며 용산까지 갔다. 기차 소음 때문에 떠드는 게 편안했다.
훗날 회고하길, 나를 떠올리면 가끔 그날 시끄러운 열차 사이에서 함께 보낸 시간이 생각난다고 했다. 그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는 얘기라고 당시에는 받아들였었는데,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보니 덕담이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 싶다. 이 문장을 읽고 있다면 범규님, 리플 달거나 카톡 보내주십쇼. 가끔 생각 난다는 게 무슨 의미였습니까?
▲멘토링
내가 원하는 멘토와 매칭이 되지 않았다고 좌절해 있을쏘냐? 생각을 고쳐먹었다. 내 인생의 어디서 종이 인형 만들기를 배울 수 있겠나? 계획에 없던 일이지만 좋은 쪽으로 생각하려 했다. 그리고 해 보니까 재미있었다. 정확한 설계와 도면에서 출발해 온 기존의 제작 과는 달리, 김지웅 멘토님은 손 가는 대로 만들다 발견되는 우연한 형태와 자연스러움에 가치를 두는 편이신 것 같았다. 이게 내가 여태 해 온 드로잉 - 설계 - 가공의 단계와는 과정이 달라서 묘한 재미가 있었다. 이렇게 막 만들어도 된다고? 이건 제작이 아니라 놀이 아닌가? 놀이...? 아. 언제부터 내게 오토마타 제작이 놀이가 아니게 되었더라?
아파트 단지 내 실내 상가에 극단 사무실이 있었는데, 상가 한 층 전체가 회사 사무실처럼 위가 뚫려 있고 옆 상가와 파티션으로만 나뉘어 있어서, 고개를 돌리면 다른 상가에서 일하는 분들이 보였다. 왼쪽에 크린토피아 세탁소가, 오른쪽에 떡집이 있어서 늘 좋은 냄새가 났다. 소음과 분진 때문에 외부와 격리된 내 목공 작업실과는 다른 구조였고, 외부와 느슨하게 연결되어있는 작업 공간이 주는 적당한 긴장감이 좋았다.
밀가루 풀을 바른 신문지를 찢어 붙여서 인형의 형태를 만들어야 하는지라 5~6시간 내내 앉아서 작업을 해야 했다. 손을 움직이는 동안 인형극과 공연 예술에 대해 궁금한 모든 것을 물어봤다. 인터파크에 올라온 인형극 공연을 보고 와서 멘토링 시간에 이건 이래서 좋았고 이래서 지루했다고 평하면 관객이 어디서 재미를 느끼는가? 재미란 무엇인가? 이야기란? 인형극이란? 그게 시장에서 팔리려면? 그러면서도 예술성을 잃지 않으려면? 종이 인형을 만드는 몇 시간 동안 문답을 이어갔다. 그 문답의 시간이 인형극이라는 미지의 영역을 탐구하는 데 무척 도움이 되었고, 매주 군포에서 멘토링을 하고 나면 조금씩, 어쩌면 나도 이 분야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작은 희망의 싹이 돋곤 했다.
극단 마루한의 멘토링에 월 4회 참석하는 게 이 사업에 참여하는 멘티의 의무였다. 나는 다른 것도 배워 보고 싶어서 인형극단친구들 김성수 멘토님, 극단 문 박영희 멘토님, 극단 사다리 유홍영 멘토님의 멘토링에도 참여했다. 참관해도 되냐고 정중하게 연락드렸고, 거절하는 분은 없었다. 사실 민폐다. 멘토분들이 내 부탁을 들어줘서 얻는 이익은 없는데, 가르칠 학생이 하나 더 느는 거니까. 그리고 각 멘토의 원래 멘티들에게도 미안한 일이다. 나 때문에 본인들의 수업 시간을 빼앗게 되는 거니까. 하지만 눈치 없는 척 웃으며 끼워달라고 했다. 업계에서 오래 일해온 전문가에게 뭘 배울 기회가 언제 또 있겠나? 거울 속의 나는 서른다섯 아재가 되어 있으니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배움을 청하는 게 맞지 않겠나. 일단 빚을 지고, 나중에 갚자고 생각하고 들이댔다.
한 달쯤 서울, 군포를 오가며 여러 멘토님으로부터 배웠고, 팀이 결성될 무렵 팀 창작에 들어가며 바빠져서 멘토링 참관을 중단했다.
▲오토마타 워크샵
매칭되지 않은 멘토에게 연락해서 멘토링을 들었던 것처럼, 멘티들 상호 간에도 다른 흐름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AC2에서 겪었던 상호 지지적인 커뮤니티를 이 안에서 야매로나마 구현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것.
우선 내껄 주는 것에서 시작해보면 좋겠다 싶었고, 오토마타 워크샵을 열었다. 멘티 단톡방에서 신청자를 받았고, 춘천인형극장의 협조를 받아 장소를 대관하고, 사람 수 대로 키트와 공구를 가져가서 워크샵을 열었다. 8명이 참여해서 작품을 완성하고 갔다.
그러나 6개월이 지난 지금 그 시도를 회고해 보면 실패라고 평가해야 할 것 같은데, 나 이후에 자원해서 자기껄 내놓거나 세미나를 열거나 하는 움직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극에 오토마타를 활용한 팀도 우리 팀이 유일했고.
무엇을 어떻게 다르게 했으면 좋았을까?
▲팀 결성
성악 전공, 놀이치료 일을 해오신 황성하님. 탭댄스 공연가로 활동하다가 연극 연출 일을 하는 임범규님이 제안을 주셔서 나도 합류했고, 3인 팀이 결성되었다. 성하, 봉서, 범규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을 따서 팀명을 ‘하봉규’라 지었다.
나는 1인극을 하겠다고 얘기해왔는데 춘천인형극장 사무국 측에서 웬만하면 1인극 하지 말라고 제안을 주셔서 따랐다. 컴포트 존을 벗어나야 성장이 있다고 했던가? 협업하면 힘들겠지. 과거, 협업했다가 원수가 되었던 사람들의 얼굴과 힘들었던 마음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번엔 더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과정에서 무언가 배우는 게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함께 하자는데 동의했다.
아씨 그냥 그때 1인극 할걸. 하는 순간이 팀 프로젝트를 하던 6개월 동안 10번쯤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다 이겨내고 극을 완성했고, 프로젝트가 종료될 때까지 팀원들과 원만한 관계로 지냈다. 고로 팀플레이나 협업 부문의 성패를 스스로 평가한다면 성공이라고 답하겠다. 그러나 갈등 상황의 결정적 순간들에 내가 했던 시도와 개입이 좋은 극을 만들고 팀워크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었는가? 과연 내가 뱉었던 문장이 침묵보다 나았는가? 를 묻는다면 확신이 없다. 그렇다면 이 성공은 성숙한 다른 팀원들의 어른스러움에 기대 있었다고 보는 게 냉정한 평가일 거다.
▲숙소
경기도 군포의 멘토링 말고, 춘천인형극장에서 열리는 교육에도 필수로 참석해야 했는데 극장까지 오전 10시까지 가려면 집에서 새벽 5시에 일어나야 했다. 5시는 내가 자려고 눕는 시간인데? 수면 부족인 상태로 춘천에 도착하면 컨디션이 최악이라서 수업을 듣기가 힘들었고, 어떤 날은 온종일 졸다가 돌아온 적도 있었다.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전날 춘천에서 1박을 하는 식으로 일정을 짰다. 내가 묵어 본 여러 숙소를 소개 해 본다.
○나비야 게스트하우스 : 한옥 마루에 앉아 책 보고 있으면 힐링 되고 좋았다. 정감 있는 느낌의 숙소.
○춘천에서 온 편지 게스트하우스 : 깨끗한 도미토리.
○1962 비즈니스호텔 : 깨끗하고 좋았으나 가격이 좀 나가는 편.
또 공연 전 한 달 동안은 서울에서 연습하는 날이 많았는데, 매일 서울-대전을 오갈 수 없어서 숙박을 해야 했다. 여러 곳에 묵었는데 가장 좋았던 한 군데를 소개한다.
모텔의 경우 주말에 연박을 하면 나 때문에 대실 손님을 못 받아서 손해다. 그래서 숙박비를 두 배 달라고 했다. 세상 돌아가는 걸 잘 모르는 나 같은 사람이 또 있을까봐 이 역시 메모로 남긴다. 모텔 보단 에어비앤비가 만족도가 높았다. 두 배 달라고도 하지 않고, 싱크대도 있고, 냉장고도 모텔에 비해 크고...
▲춘천인형극제
춘천인형극장의 가장 큰 행사인 춘천인형극제 퍼레이드가 8월 28일에 계획되어있었고, 퍼레이드에 사용할 대형 인형을 마루한 멘토링 때 만들기 시작했다. 나는 영화 매드맥스의 이모탈을 닮은 토끼 탈을 사람이 쓰고 다닐 수 있게 만들었다. 줄을 당기면 빨간 눈알이 좌우로 움직여서 기괴한 느낌이 들었다. 내 인형을 마주한 춘천시 미취학 아동들의 겁먹은 얼굴을 떠올리며 착실히 인형을 만들어 나갔다. 거의 완성했을 무렵, 퍼레이드를 5일 남기고 나는 뻐킹 코로나에 걸리고 말았다.
법정 감염병에 걸렸는데 도망칠 묘수가 있겠나? 나는 꼼짝 없이 자가 격리 행이었고, 작업실에 앉아 유튜브로 생중계되는 축제 영상을 보는데 아, 왜 하필 이때 코로나에 걸렸나, 한탄했다. 이후에 멘티 박예슬 님이 회고하길, 시민들의 환호를 받으며 인형 퍼레이드 대열에 섞여 춘천 거리를 행진하면서 깊은 소속감을 느꼈고, 벌써 인형극인이 된 것 같다고 전했다. 아마도 그게 고래적부터 있어온 카니발의 본래 목적 아니었겠나. 근데 그 순간에 나는 없었구나. 슬펐다.
우울해하고만 있을 수 없어서 격리 기간 동안 작업실에 틀어박혀 축제를 기념하는 바람개비 오토마타를 만들었고, 격리 해제 후 남은 축제에 참여할 때 가져가서 기증했다. 춘천인형극장 마스코트인 코코바우가 별 막대를 흔드는 오토마타였다. 극장 사람들이 고마워해서 뿌듯했다.
늦게 축제에 참여해서 여러 공연을 봤는데, 황윤희 대표님의 <신통방통 도깨비>가 오래 기억에 남았다. 힘을 하나도 안 들이고 편안하게 연기를 하는데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재미있어서, 아. 내가 되고 싶은 연기자의 모습이 바로 이거구나 싶었다. 엉? 한국의 알렉스 바티가 되겠다매. 마리오네트 한대매. 그렇다. 나는 수개월 동안 많은 인형극을 접하고 교육을 들으면서, 비로소 ‘취향’이란 게 생긴 것이었다.
축제는 재미있었다. 낮에는 시민들을 위한 공연이 열렸고, 밤에는 인형극인과 극장 관계자분들의 미니 축제가 밤늦도록 이어졌다. 많은 사람과 인사했고, 명함을 받았다. 오토마타를 한다고 하니 다들 호의적이었다.
인형극인들의 기증품으로 진행한 경매 행사가 기억난다. 내년에 축제에 참여한다면 오토마타를 한 점 기부해봐도 좋겠다.
▲극
창작은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범규님, 성하님, 그리고 내가 차례대로 코로나에 걸려서 시간을 허비했고, 이야기는 한 장면도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아서 초조했다. 극은 여러 번 엎어졌다. 무슨 극을 만들까? 부터 토론의 연속이었다. 우리는 대학로 아르코 앞 붉은 벽돌 계단에 앉아 토론했고, 군포 시내를 걸으며 토론했고, 배스킨라빈스에 앉아 토론했고, 밥 먹으면서 차 마시면서 토론했는데 진전이 있기보단 공회전 하는 느낌이었다. 어디가 옳은 방향인지 누구도 확신하지 못했다. 토론은 갈등으로 이어지기도 했고, 협업은 피로하고 지루했으나 드물게 앙상블이 잘 될 때 기쁨이 있기도 했다.
창작 과정의 중요한 분기점이 공연 1주일 전에 있었는데, 팀원 황성하님의 부탁으로 극단 문 박영희 멘토님이 연습실에 오셔서 참관해주신 것이다. 우리 공연을 보시더니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다’, ‘한 게 중요한게 아니라 관객에게 그렇게 보이는 게 중요하다’, ‘일단 너무 재미없다’는 평을 해주셨고, 큰 줄기의 코칭을 해 주셨다. ‘한 게 중요한게 아니라 관객에게 그렇게 보이는 게 중요하다’는 조언은 다섯 달 전, 극단 문 멘토링을 참관했던 때에도 배웠다. 그러나 수개월 준비하고 연습한 우리의 최선에 대해 무엇이 안 보이는지, 보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짚어 주시니까 그 조언이 무슨 뜻인지 깊이 이해가 되었다. 4시간씩 이틀 코칭을 해주셨는데 6개월 창의인재 사업 기간 동안 인형극 연출에 대해 가장 많이 배운 시기가 바로 이때의 이틀이었다. 물론 그전까지 팀에서 장면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고민한 시간이 없었다면 코칭의 약발도 적었을 거다. 배움이란 게 남이 도와줄 순 있어도 해줄 순 없는 거 아니겠나.
지금 돌아보면 장면이 완성되었을 때 좀 더 일찍 멘토님께 보여드리고 상담받았으면 어땠을까 싶다. 우리 안의 생각에 갇혀서, 최선이라 여기는 게 최선이 아닌데도 그걸 반복 연습하고 있었다는 건 더 나은 극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날린 거 아니었을까. 다음 창작에 이번의 시행착오를 염두하고 작업을 해 나가면 좋겠다.
▲D-Day. 잇다 인형극제
창의인재 사업의 마지막, 멘티 팀 공연으로 이루어지는 ‘잇다 인형극제’가 금토일 3일간 진행되었고, 일요일 1시가 우리 팀의 공연 일시였다. 금요일에 미리 춘천에 가서 사무국이 지원해주는 호텔에서 2박을 했다.
금요일에는 밤늦게까지 대극장 창고에서 소품 채색 작업을 했다.
토요일에는 빈 회의실을 찾아서 주인공이 서핑보드를 타는 2인 조종 장면을 성하님과 연습했다.
토요일 밤, 숙소에서 혼자 있는데, 연습 하느라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여자친구로부터 이별 통보를 받았다. 상실감이 컸다. 당장 내일 공연인데 기분이 엉망이었다. ‘10년 만에 휴가를 가서 신난 의사’를 첫 장면에 연기해야 하는데 이 상태로 어떻게 무대에 서지? 안 그래도 침울한 성격이라 첫 씬 연기가 안 되는데.. 반년을 애써온 걸 이런 식으로 망친다고?
어떻게든 해결해야 할 것 같아서 헤드폰으로 노래를 들으며 춤을 췄다.
다음 날 공연 직전까지 우리가 만든 공연에 자신감이 없었는데 드레스 리허설 때 무대 감독님이 ‘재미있는데요’라고 한게 격려가 되었다.
공연은 성공적이었다. 아무래도 관객 다수가 멘토님, 극장 관계자 분들이어서 어설픈 이야기와 연기에 호의적이었던 게 아닌가 싶다. 특히 그 리듬, 전날 밤 호텔에서 만든 노래를 관객분들이 좋아해 주셔서 묘한 기분이었다. 어떻게든 안 망치려고 애쓴 거였는데.
저녁에 공연예술계 전문가로부터 합평회 시간을 가졌다. 그때 메모한 문장들을 옮겨 본다.
□참여자
● 조현산(예술무대산 연출)
● 이병훈(연출가)
● 오정석(극장장)
● 엄현희(평론가)
● 전진찬(재단법인 인제군문화재단 공연팀장)
● 한정연(평택시문화재단 팀장)
● 심규만(강릉아트센터 관장)
● 최정우(재단법인 오산문화재단 공연팀장)
● 이재원(원주다이내믹댄싱카니발 예술감독)
● 안기숙(재단법인 춘천인형극제 기획PD)
● 선욱현(춘천인형극제 예술감독)
□대화
● 오정석 : 제작 의도가 무엇인지?
● 임범규 : 황성하 배우님과 환경에 대해 평소에 관심이 있었고, 함께 고민하며 작품을 만들었다. 진지하게 환경을 이야기하면 아이들이 따라가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블랙코미디로 연출 방향을 잡았다.
● 황성하 : 범규님이 자기소개할 때 자우림을 좋아한다고 했다. ‘사랑의 병원으로 놀러 오세요’라는 곡이 있는데, 바닷속에 병원이 있으면 어떨까? 라는 상상에서 출발했다.
● 권봉서 : 공연 예술에 대해 아는 바가 없어서 팀원이 시키는 대로 했다.
● 오정석 : 봉서씨는 1인극 하겠다고 했는데?
● 권봉서 : 사무국의 제안으로 팀 활동을 하게 되었다. 연출이 왜 필요한지, 미술 작업에서 높은 기준을 갖는 게 왜 중요한지에 대해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 선욱현 : 무장해제가 되었다. 아이들 마음이 되어서 웃게 만드는. 컨셉을 잘 잡으셨다. 낙천성이 힘을 발휘한다. 아우슈비츠를 코미디로 풀었던 다른 작품 사례 소개. 밝음의 힘이 있다. 드라마는 가다 말았다. 극 끝나고 밖에서 다른 분들과 얘기하면서 하와이, 제주, 발리를 다 다니면서 이야기를 조금씩 만들어주면 한 편의 이야기로 완성될 수 있지 않을까 상상했다.
● 이재원 : 공연 시간이 20분 정도 되었죠? 50분은 되어야 정상적인 공연이 된다. 소재나 아이템에 대한 접근은 훌륭했다. 살을 붙이고 공감대를 끌어들이려면? 나라면? 프로그램을 디테일하게 개발한다면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장 가능성이 있다. 가능성을 열어봐라.
● 선욱현 : 넌버벌은 어렵다. 대사를 해도 되는데 왜 안 하지? 라는 생각이 들게 마련. 그런데 인어 병원 의사가 말을 안 해서 너무 좋았다. 말을 했으면 평범해졌을 것. 퍼펫티어의 애드립으로 대사가 들어간 게 좋았다.
● 전진찬 : 팀 이름이 하봉규이니까 팀원이 바뀌면 안 되겠다.(웃음) 이게 출발이다. 시장에 들어온다고 생각하고 상업적으로 어떻게 팔 것인가 생각하라. 진지하게 생각해보라.
● 한정연 : 디벨롭 했으면 좋겠다. 인어공주가 남자여서 더 좋았다. 유통에 경쟁력이 있을 듯.
● 심규만 : 타깃을 어떻게 잡지? 이 극이 장사가 될까? 를 늘 고민한다. 오늘 봤던 게 다 수준이 높았다. 저걸 아이들만 와서 볼 수 있을까? 부모랑 엮어서 팔면...? 수요층에 맞춘 정책이 필요하다. 부모랑 같이 엮어서 수준 높은 것을 공감할 수 있게 하면?
● 엄현희 : 주제가 착하다. 요즘 이슈이고. 세 분이 합이 잘 맞아서 좋았다. 바다 세계를 묘사하기 위해 탐구한 노력이 보였다. 노래가 인상적이었다. 사람들이 따라 불러서 좋았다.
● 조현산 : 레퍼토리의 가능성이 높다. 자신들의 무기, 고유성을 가진 것 같다. 아쉬운 점이 있지만 이 팀 만의 무기나 고유성이 약점을 덮는다. 레퍼토리를 꼭 하셨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아깝다.
● 이병훈 : 연기자들이 흥겨워서 하는 게 참 중요하다. 초보적인데 흥에 겨운 게 매력이다. 처음에 경험했던 연기의 경험이 어땠나를 잊지 말고 기억하기. 팀워크를 놓치면 꽝 된다. 앙상블을 잘했다. 그게 미덕이다.
● 오정석 : 무대 세트에 방염 필증을 해야 한다. 관계자만 보는 것과 관객이 보는 공연은 다르다.
처음 극을 만들어 본 아마추어를 향한 말이니 아무래도 비판보다는 격려가 더해졌다는 걸 감안하고 듣는 게 진실일 거다.
공연일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시점에 이 글을 쓴다. 지난 시간이 다 그렇듯 휙 지나간 것 같고, 고통도 즐거움도 벌써 옛 추억이 된 듯 멀게 느껴진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나는 애초에 계획한 걸 얻었나? 얻지 못했다. 마리오네트를 하지도 못했고 1인극은커녕 별 관심 없는 환경 주제로 테이블 극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후회하는가? 아니다. 계획에 없던 만남, 배움, 즐거움이 있었다. 밀도 있는 시간이었다.
피할 수 없는 마감에 몸을 던져서 무대에 올라 보면 공연예술이 내 몸에 맞는지 아닌지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주인공을 연기했고 좋은 평가를 받았는데도 잘 모르겠다. 이 일이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인가? 몇 번 더 해보면 알 수 있을까?
몇 년 더 지나 이때를 어떻게 회고하게 될까? 지금 찍어 놓은 점들이 미래에 어떤 방향으로 나를 이끌지는 좀 더 살아봐야 알 것 같다. 늘 그랬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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